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틴 루터 킹 (문단 편집) === 암살 === [[1968년]] [[4월 4일]]에 과격파 백인단체 소속의 제임스 얼 레이[* 이전에 주유소나 가게 등에서 도둑질을 한 전과가 있는 범죄자였다.]가 쏜 총에 맞아 암살당했다. 제임스 얼 레이는 [[인종차별주의]]자였으며, 당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[[조지 월리스]]의 열렬한 지지자였고, 조지 윌리스가 역설한 [[분리주의]] 이론에 푹 빠진 사람이었다. 이전에도 교도소를 3번이나 복역한 범죄자였고, 세 번째 범죄를 저지르고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는데 1967년에 [[탈옥]]한 상태였다. 이후 미국과 멕시코를 오가며 도망생활을 하다가 앨라배마 주 버밍엄에서 가명으로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Remington_Model_760|레밍턴 모델 760]] [[소총]]과 [[.30-06 스프링필드]] 총알 20발, [[망원조준경]]을 구입했다. 그리고 4월 2일 테네시 주 멤피스로 와서 마틴 루터 킹이 투숙하는 로레인 모텔 맞은편의 셋방을 빌렸다. 사건 당일 저녁에 마틴 루터 킹은 306호실 앞 발코니에서 [[제시 잭슨]] 목사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. 오후 6시 1분에 제임스 얼 레이는 레밍턴 모델 760을 킹 목사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. 총알은 킹 목사의 오른쪽 뺨 아래쪽으로 뚫고 들어갔고, 척추와 경정맥 및 동맥을 관통한 뒤 어깨에 박혔다. 총을 맞은 뒤에도 맥박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킹 목사는 급히 인근의 성 요셉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오후 7시 5분에 사망했다. 제임스 얼 레이는 킹 목사를 살해 후 총을 버리고 도주했고, 애틀랜타를 들러서 [[캐나다]] [[토론토]]로 도망쳤다. 그리고 거기서 가명으로 가짜 캐나다 [[여권]]을 구해서 [[영국]]으로 도망쳤고, 영국에서 [[포르투갈]] [[리스본]]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[[런던]]으로 돌아갔다. 그리고 [[벨기에]] [[브뤼셀]]로 도망치려다가 가짜 여권이 발각되어 영국 경찰에게 체포되어 미국으로 [[추방]]당했다. 추방된 얼 레이는 [[FBI]]에 체포되어 99년형을 언도받아 복역하다 1977년에 탈옥을 또 감행했지만 3일 만에 붙잡혔다. 형은 100년으로 늘어났고, 1998년 교도소에서 지병이 악화되어 70세로 사망했다. 킹 목사의 죽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했고 [[음모론]]이 발생했으며[* 제임스 얼 레이의 진술도 음모론을 키우는 데 한몫 했다. 본인이 총을 쏘지 않았고 라울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음모를 꾸며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주장했고, [[변호사]]가 이걸 [[플레이보이]]지에 실어서 널리 알렸다.] 미국 전역에서 킹 목사의 죽음에 분노한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나 도시 중심부에서 방화와 건물, 차량 파괴, 약탈 등 폭력시위가 벌어졌다. 시위대는 흑인 지도자들의 자제 요청과, 수천 명의 군인 및 경찰이 출동하자 저절로 해산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